기 · CHAPTER 04

회고 · 여왕의 조건

열 해 전, 여왕은 판을 놓고 이기면 떠나도 좋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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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에 명령이 없었던 이유를, 그는 열 해 전 대전에서 들었다.

대전 한가운데 낮은 탁자가 놓였다. 탁자 위에는 여덟 줄씩 가로세로로 나눈 나무판과 두 무리의 말이 있었다. 흰 말은 강가의 밝은 목재로, 짙은 말은 오래 말린 나무로 깎았다. 모양은 왕, 신하, 코끼리, 말, 전차, 보병이었다.

궁정의 목공 케샤바가 허리를 숙였다. 손가락 하나가 없었다. 젊어서 전차 바퀴를 만들다가 잃었다고 했다.

“장군들의 모래판을 작게 옮겼습니다. 말이 움직일 길을 정해 두면, 누구든 같은 조건에서 생각을 겨룰 수 있습니다.”

이 판 하나가 모든 전쟁놀이의 시작이라고 케샤바는 말하지 않았다. 오래된 놀이와 군사들의 연습을 가져다 손질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왕은 이것을 아들에게 줄 새로운 과제로 삼았다.

“네가 이기면 떠나도 좋다.”

아린드라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로요?”

“네가 배우고 싶은 곳으로. 스승도, 공부할 책도 네가 고르거라. 내가 사람을 붙여 하루를 정하지 않겠다.”

대신 아린드라이 지면 앞으로 세 해 동안 여왕이 정한 군사 교육을 따르기로 했다. 아린드라은 판보다 어머니를 오래 보았다.

“제가 떠나 있는 동안 나라의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십시오.”

“자유를 달라면서 내 명령도 기다리겠다는 것이냐?”

“명령 말고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여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부의 조건을 기록하라는 손짓을 했다. 타라가 갈대 펜을 들었다. 왕자의 조건까지 적으려 하자 재상 수바후가 손을 내밀었다.

“필요 없는 문장이다.”

“말씀하신 것은 적어야 합니다.”

타라가 조용히 말했다. 여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재상은 손을 거두었다.

말의 길은 궁정에서 합의한 것이었다. 전차는 막히지 않은 곧은 길을 달렸다. 말은 굽은 걸음을 뛰었고, 신하는 왕 곁에서 짧게 움직였다. 코끼리의 걸음에는 케샤바가 별도의 표시를 새겨 놓았다. 훗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쓰게 될 규칙과 같을 까닭은 없었다.

“사흘 뒤에 둔다.”

여왕은 짙은 왕을 집었다. 아린드라이 어릴 때부터 만지던 나무 인형보다 작았다.

“사흘이면 충분하겠느냐?”

“규칙을 배우기에는 충분합니다.”

“나를 이기기에도?”

아린드라은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건 두어 봐야 압니다.”

그날 오후 소문이 장터까지 퍼졌다. 책벌레 왕자가 여왕에게 나라 밖으로 나갈 허락을 걸었다는 소문이었다. 주막에서는 누가 먼저 질지 돈을 걸었다. 여왕의 패배를 점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케샤바는 빈 탁자를 닦다가 타라에게 말했다.

“말을 다 깎아 놓으니 사람이 하나 부족하구나.”

“무슨 사람요?”

“판 밖에서 말을 치우는 사람.”

타라는 그 문장을 조건문 아래에 적었다. 아직은 어디에 쓸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