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이 놓아준 한 수강을 지운 장기판

결 · CHAPTER 17

강을 지운 장기판

고려의 바닷가에서 강이 있는 판과 강을 지운 판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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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더 지나 고려의 바닷가에 비가 내렸다. 상선의 짐을 내리던 윤서가 젖은 상자를 받았다. 안에는 약재와 종이, 둥근 놀이말이 섞여 있었다. 상인의 통역을 맡은 그는 종이 사이에 끼인 낯선 여왕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것은 샤오란의 손에서 여러 번 베껴진 이야기였다. 린허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딸의 이름은 어느 사본에서 ‘어린 필사자’로 바뀌어 있었다. 윤서는 그 구절 옆에 물음표를 찍었다.

그가 묵는 집의 주인 해진은 군인으로 성을 지킨 적이 있었다. 왼쪽 다리를 다친 뒤에는 장터에서 나무 그릇을 팔았다. 저녁에 윤서가 외국말의 뜻을 설명하면 해진은 칼로 말판의 선을 새겼다.

“그 나라 판에는 강이 있다지?”

“예.”

“우리가 두는 것에는 굳이 그리지 않아도 되겠군.”

윤서는 목공이 한밤에 장기를 발명했다고 쓰지 않았다. 바닷가와 고을에서 이미 두던 판들이 있었고, 사람마다 익숙한 규칙도 조금씩 달랐다. 해진은 자기가 배운 방식으로 선을 그었을 뿐이었다. 윤서는 다른 고장 사람이 오면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완성된 말에는 차와 포와 마와 상의 글자가 들어갔다. 장수와 사는 궁 안에 놓였다. 해진의 딸 소월이 작은 말을 세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왕은 왜 이렇게 조금만 다녀요?”

해진은 다친 다리를 뻗었다.

“다들 왕을 지켜서 그런가 보지.”

“그러면 다른 말은 누가 지켜요?”

윤서는 인도의 왕자가 전차를 내준 대목을 읽어 주었다. 소월은 잃은 말부터 손바닥에 모았다.

“이건 이제 아무 일도 못 해요?”

“다음에 다시 놓으면 되지.”

해진이 말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성벽에서 떨어진 친구도 다음 판에 놓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바깥에서 군량을 거두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집집마다 곡식 자루를 내놓았고, 어느 집에서는 울음이 났다. 소월은 장기판 위에 작은 쌀알을 하나 놓았다.

“이것도 말이에요. 안 먹으면 못 움직이니까.”

해진은 웃다가 고개를 돌렸다. 윤서는 쌀알을 치우지 않았다.

다음 날 윤서가 책을 베끼자 소월이 옆에서 글자를 물었다. 그는 여왕의 이름을 소리대로 적었다. 여러 나라의 입을 거치며 이름은 많이 닳아 있었다. 원래 모습과 같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여왕이 약속을 지켰다는 문장은 남아 있었다.

소월은 그 문장을 열 번 썼다. 마지막에는 자기 이름을 적었다. 윤서는 지우지 않았다. 그 책에서 처음으로 ‘어린 필사자’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해진은 저녁마다 판을 폈다. 소월은 오래 두다가 가끔 아무 말도 움직이지 않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재촉하던 손을 무릎에 놓았다. 바깥의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